2010년 08월 20일
공지사항+방명록
여기는 구경거리의 세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꾸며낸 것
하지만 네가 나를 믿어준다면
모두 다 진짜가 될 거야
_E.Y. Harburg & Harold Arlen, It's Only a Paper Moon
# by | 2010/08/20 11:10 | 방명록 | 트랙백 | 덧글(15)
지금까지의 나의 원칙은, 하루키장편은 일년에 하나씩만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원칙을 깬 것은 <1Q84>의 영향이었다고 생각된다. 아직 1, 2 권이지만 그만큼 <1Q84>는 영향력있는 책이었다. 그리고 그 책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처음에는 얼마나 잘난 책이 나왔길래 그렇게 호들갑인가 했고, 막상 읽어보니 오랜만에 느끼는 하루키소설의 재미에 흠뻑 취해있었다. 그러나 완성도로는 비교할 수 없지만 <1Q84>보다 재밌는 하루키소설은 더 많다. <상실의 시대>가 마치 하루키 소설의 전부인것처럼 이야기하는 것도<1Q84>가 하루키소설의 완성작이라고 하는 것도 부정하고싶다.
하루키 어덜트(하루키소설을 좋아하는 어른들).
이것은 나에게는 호기심의 존재. 나는 하루키 어덜트가 아니다. 그냥 어린애였고, 그냥 재미있는게 좋아서 하루키소설을 읽었다. 중학생때 헌책방에서 제목이 맘에들어 싼값에 사들인 책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였을 뿐이다.
내가 어덜트가 되어갈 무렵 "하루키를 좋아하는 나이먹은 이들은 보통 피터팬컴플렉스(요즘말로 중이병환자)다"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그것에 어느정도 동의하였다. 잠시 하루키를 멀리하고 일본여류작가의 흥행에 발맞춰 나도 야마다 에이미를 좋아했다. (에쿠니가오리는 별로. 유부녀가 되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다 2004년 겨울무렵에 <해변의 카프카>로 다시 하루키를 읽게되었다. 그 이후작들이 시들시들해서 대체제로 그전에 읽지않았던 장편들을 다시 읽었다. 몇일잡고 다 읽어버리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너무 아깝다. 나이먹고 그가 어느날 갑자기 절필해버려서 더이상 읽을 수 없게될까바 욕심내지 않고 야곰야곰 읽어가고있다.
<1Q84> 2권을 읽던 둘째날은 집에서 옴짝달싹 않고 줄곧 책만 봤다. 읽는게 느린지라 이틀정도가 걸렸는데 첫쨌날의 일기에는 "다 읽어버리고 빨리 이 세계에서 빠져나가고싶다"라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다 읽은지 꽤 된 지금에서야 깨닳았다. 나는 그 책을 다 읽어도 그 세계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 읽기전에 내가 살아온 세계가 1984년이였다면, 읽고난 후에는 어쩔 수 없게 나는 1Q84년의 존재를 알게되었고 그것만으로도 나의 세계는 이미 바뀌어버렸다.(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냥 그대로 1Q84년임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알고있는 것과 모르고있는 것은 상당히 다르다.)
그리고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읽어야겠다 싶었다. 아직 절반만 읽은 상태.
<1Q84>에는 노골적인 기독교이야기가 있었다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세계의 끝은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내가 잠시나마 교회를 다니며 느꼈던 기독교였다.
"아니, 틀리네. 친절함과 마음은 전혀 별개의 것일세. 친절함이라는 것은 독립된 기능이지. 좀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표층적인 기능일세. 그것은 단순한 습관이지, 마음과는 다른 것이네.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훨씬 깊고, 훨씬 강한 것이라네. 그리고 훨씬 모습된 것이지."
세계의 끝은 차단된 상실의 공간이다. 그곳에 들어가기위해서는 그림자를 놓고 가야하며 그림자가 없는 사람은 마음(=감정)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마음이 없는 사람들의 삶은 매우 평온하다.
나에게는 계절우울증이 있는데, 일조량이 적은 겨울이 되면 유독 우울하고 외로워하고 신경질적이 된다는 것이다. 작년에는 유독 외로움이 큰 해였는데, 사람의 반김이 너무 좋아서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처음 보는 상대에게 너무 친절하고 너무 사랑해주고 받기고 걱정해주고 염려해주고. 하나님의 사랑이 이런건가 싶었다.
그렇게 교회를 다니다 의문이 생겼다. 중보기도. 다른 사람의 행운을 기도한다는 것은 나로써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도 교회에서 기도하는 동안에는 누군가의 행복과 안녕을 기도했으니... 이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일종의 습관과같은게 아닐까 생각되었다.
기독교를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고, 차근차근히 성경을 이해해나가다 부딪힌 의문들은 내 믿음에 근본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그리 믿음이 크지도 못했고...
자유의지. 교회에서는 자유의지가 용납되지 않는 것 또한 나에게는 힘든일이 었다. 성인이 될때까지 모든 것을 자유의지로 살아가던 사람이 모든 뜻을 하나님으로 놓기란 쉽지 않았다. 그 대신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돌리고 나면 마음은 참 가벼워진다. 아무리 불행한일이 닥쳐도 '왜하필 나한테 이런일이?'라며 좌절할 필요없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니 이 고난을 이겨내면 하나님은 더 큰 보상을 주시리라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끝에서의 마음을 잃어버린 평안(선택과 비선택이 혼재)과 자유의지를 반납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얻는 평안(역시 선택한 자와 모태신앙으로 비선택의 선택이 혼재).
나는 결국 자유의지를 선택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로 치자면 주인공이 자신의 그림자를 버리고 마음을 점차 잃어갈때 마음의 소리에 귀길울여 조심스럽게 다시 그림자를 찾으러 간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가 내가읽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권의 감상이다.
마음을 포기하고 세계의 끝에 머물기로한 '나'는 결국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겠지.
# by | 2009/11/19 22:04 | Burning | 트랙백 | 덧글(0)




# by | 2009/11/18 19:20 | Burning | 트랙백 | 덧글(5)
# by | 2009/11/17 13:08 | 영화 | 트랙백 | 덧글(3)





# by | 2009/11/12 21:17 | Burning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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